Masyanary

야겜

인간이 야동을 보는 유일한 동물은 아니다. 그러나 야겜을 하는 유일한 동물은 인간이다.

야겜은 플레이어에게 연애감정이나 성적 흥분, 충동을 일으키는 게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야하다'의 어근 '야-'가 '게임'의 준말인 '겜'에 붙은 파생어로,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성적인 소재를 담은 게임이 야겜이라고 불립니다. 비슷한 말로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비주얼 노벨 등이 있지만, 모두 범주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논의하기 위해서 (그리고 제 지식의 범위를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위 정의를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또, 논의의 대상을 한국 안으로 좁히고, 필요에 따라 일본의 경우를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PC통신,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보급되었고, 일부는 게임잡지 부록(!)으로 퍼지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시대를 잘 따라가지 못한 청소년 보호망을 뚫고, 2010년 현재 20~30대인 당시 청소년들의 성의식에 대단한 공헌을 한 여러 소스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겜의 시초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요? 뭐 대개 '최초의 컴퓨터 게임' 내지 '최초의 온라인 게임'을 찾는 시도와 비슷하게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큰 흐름만 살펴보자면 코에이, 스퀘어, 팔콤 같은, 요즘은 '멀쩡한 게임 만드는' 회사들이 PC-98시절 야겜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얘네들은 한국에서 야겜을 말할때 그닥 중요한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야겜을 말하자면 최초에 거론해야 할 대상은 아마 엘프인 것 같습니다. PC-98에서부터 MS-DOS, 더 나아가 윈도우95/98 시절까지 드래곤 나이트, 동급생 시리즈, 유작 시리즈를 통해 멀쩡한 청소년들을 야겜의 길로 몰아넣은 걸로 봐서 요정이라기보다는 악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연애라면 연애, 성적 자극이라면 성적 자극, 당시로서는 어느 한쪽으로도 빠지지 않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모범적인(?) 회사였습니다. 이후 엘프(그리고 자매 브랜드인 실키즈)의 부진과 함께 여러 다양한 게임 회사들이 정말로 다양한 야겜들을 만들어 왔습니다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야겜이라는 명칭, 정의, 분류

한국에서 야겜이란 명칭은 논란이 많았습니다. (엔하위키 참고) 많은 경우 '야겜'이라는 단어는 성행위의 묘사가 들어가 있는 게임으로 제약되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야겜이라는 단어를 '연애감정, 성적 흥분'에 연결시킨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게임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고, 따라서 게임을 분류할 때 중요한 요건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느냐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게임을 '기쁨 게임' '적대감 게임' 식으로 분류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야겜의 경우에는 꽤나이런 식으로 정의하는게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야겜을 연애감정과 성적 흥분에 연결시켜서 정의하는거 꽤 그럴듯해 보이지 않습니까?

다른 명칭을 채택하지 않고 꽤나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야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미연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은 통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만, 너무 폭이 좁습니다. 뭐 '미소녀'라는 단어가 너무 남성, 그것도 스트레이트의 취향만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은 치워 놓겠습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명칭이 큰 문제입니다. 이 단어를 나름대로 엄격하게 사용하자면 다룰 수 있는 게임의 수가 너무 한정되고, 많은 게임을 포용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면, 그야말로 '슈퍼 마리오'를 배관공 모험 시뮬레이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게임'이라는 단어를 '시뮬레이션'이라고 대체해도 될 정도로!) 외연이 넓어지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엔하위키 참고) 비슷하게 비주얼 노벨도 그 폭이 좁고, 게다가 야겜이 아닌 비주얼 노벨도 많이 있습니다.(스릴러, 추리 등) 야겜이란 단어가 너무 성적인 것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뭐 그래도 '연애 및 성행위 게임'보다는 '야겜'이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습니까?

이 정의의 문제점 중 하나는, 연애감정이나 성적 흥분, 충동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수용자를 기반으로 한 정의의 문제는 수용자에 따라 어떤 게임이 정의에 포함되는지 아닌지가 달라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뭐, 상식적으로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연애 감정을 일으키는 게임과 여성에게 연애 감정을 일으키는 게임은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명백히 나뉘는 세그먼테이션 이외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두 남성과 한 게임이 있는데 한 명은 그 게임을 통해 연애감정을 자극받는데 다른 한명은 자극받지 않는다, 이런 상황도 있지요. 물론, '자극받는 남성에게 그 게임은 야겜으로 작용하고 자극받지 않는 남성에게는 야겜이 아니다' 처럼 말할수도 있습니다. 이게 하나의 연구 방향인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일부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게임들- 예를 들자면 공격을 맞을때마다 갑옷이 벗겨져 노출도가 증가하는 SRPG 같은 게임에서 특수한 상황이 아니며, 따라서 무시할 수 없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정도 '어떤 게임 A가 야겜이다/아니다'를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실 또 한 가지의 척도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제작자의 의도입니다.

게임을 만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게임을 만들었는가는 그 게임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게임을 분류할때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문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게임 제작자한테 '이걸 야겜으로 만들었느냐'라고 물어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들한테 '이게 너희들을 성적으로 자극했느냐'고 설문조사를 하는것보다는 훨씬 쉬워 보이지만… 게임에 어떤 시스템과 내용을 집어넣었느냐로 판단하는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시/묵시적인 히로인 선택 분기, 성행위의 묘사, 이미지의 제공 등. 우리가 어느정도 '야겜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들, 그러니까 야겜의 '문법'이 게임에 포함되어있느냐 아니냐로 야겜 여부를 (제작자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용자와 제작자 쌍방에서,

  1. 제작자가 야겜으로 만들고, 수용자에게 야겜으로 작용하는 게임
  2. 제작자가 야겜으로 만들었지만, 수용자에게 야겜으로 작용하지 않는 게임
  3. 제작자가 야겜으로 만들지 않았지만, 수용자에게 야겜으로 작용하는 게임
  4. 제작자가 야겜으로 만들지 않았고, 수용자에게 야겜으로 작용하지 않는 게임

의 네 가지로 게임을 나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네 번째 경우는 어쨌든 야겜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표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작 의도
야겜 야겜이 아님
수용 결과 야겜 야겜 광의의 야겜
야겜이 아님 못야겜 안야겜

야겜과 안야겜은 비교적 명백해 보이고,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 간단히 보겠습니다.

광의의 야겜

야겜적인 문법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플레이어에게 연애감정이나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게임들입니다. 이 경우는 사실 무궁무진한 것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관찰자적 기질'은 언제나 발휘될 수 있고, 마치 드라마를 보며 그 안의 인물에게 연애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캐릭터에게 (어떻게 보자면 착각에 가까운)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보기에 예쁜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어찌보면 이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1).

또, 원작 게임이 할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 안에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들어가는 게임들도 포함시킬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옷을 갈아입히고 자세를 설정할 수 있는 3D 아바타를 채용한 게임 같은거 말이죠. 혹은 각종 MOD를 추가할 수 있는 게임.

제가 살고 있는 문화권에서는 마비노기, 마비노기 영웅전, 앨리샤 등을 야겜이라고 부른다는 건 비밀입니다.

못야겜

안야겜은 '야겜이 아닌 거고' 못야겜은 '야겜이 못 된 거'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네. 제작사는 야겜으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사용자에게 어필하지 못한 게임입니다. 일본 및 한국 오타쿠 문화권에선 지뢰라고도 불립니다. 스토리적으로 전혀 몰입을 할 수 없거나, 일러스트가 너무 구려서 보기 거북하다거나… 사실 농담에 가까운 분류입니다. 네. 빌어먹을, 사실 이 문서 전체가 지독한 농담입니다.

다른 매체와 비교

야겜의 성적인 면을 강조해서, 다른 성인매체와 한번 비교해 봅시다. 주된 성인매체인 야동과 비교했을 때 야겜의 소비자들은, 음… 뭐라 말하기 어렵군요. 예를 들자면 미성년자인 남동생이 야동을 보는 것을 발견한 것의 충격과 야겜을 하는 것을 발각한 것의 충격을 비교해 봅시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면갤 4대 추천작이 아니기만 바랄 뿐. 어쨌든 남자가 야동을 본다고 할 때의 "뭐 야동 안보는 남자가 어딨어"하는 반응과 야겜을 한다고 할 때의 "뭐야 저 변태/오타쿠는"하는 반응의 차이는 확실합니다. 과연 야겜을 성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신적 훈련이 필요한 것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동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성을 파는 사람을 만든다. 이것이 야동 산업과 야겜 산업의 차이이다.

야겜보다 더욱 추상화된 매체로 야설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성적 내용을 담은 비주얼 노벨이 야설의 게임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야동↔야겜↔야설의 추상화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 '비주얼 노벨'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말하면 비주얼 노벨로 대표되는 기존의 야겜은 단순히 다른 서사 매체 작품에 분기를 나누고 일러스트를 추가한 이식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3D 기술과 AI 기술, 인간 인지 연구등 각종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야겜에 있어서도 조금씩 모습이 갖춰진 상호작용이 구현되고 있는데, 러브 플러스와 같은 게임이 21세기 야겜의 갈 길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 야겜들

  • 이사쿠 : 배드엔딩에 가까워질수록 흥미진진한 게임. 게임을 '클리어'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듬.
  • 둥지짓는 드래곤 : 야겜도 '게임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
  • 햇살속의 리얼 : 터치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야겜의 가능성을 보여줌. 정작 이 게임은 터치 인터페이스를 쓰지 않았지만!
  • 3D 커스텀 소녀 : 광의의 야겜의 '3D 아바타 가지고 놀기'가 야겜으로 편입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에 성능 차이가 없을 경우 이성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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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겜.txt · 마지막 수정: 2010/05/15 01:10 작성자 masya